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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사랑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 A가 나에게 이별을 통보하면서

'끝까지 사랑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라고 했던 건 그나마 그녀의 최소한의 인간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마냥 비난받을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더럽기는 나도 마찬가지였을테니까.

요즘 그나마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건 내가 곧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잠시이든 아니면 영영이든 떠나게 되고 보니 여러가지로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그리고 왠지 이번 떠남을 준비하면서는 영영 떠나는 것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여러가지 건강을 걱정하게 될만한 일들도 있었고, 또 꽤 오랜기간 삶에 대해 약간은 좌절한 상태로 버텨왔기 때문일테지만, 거기에 더하여 '이정도면 됐다' 싶을 만한 일을 지켜보고 나니 그냥 당장 떠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안그래도 지루하던 삶에 '아 이거면 되겠다'하니 이걸로 빨리 이 삶은 결론을 내버리고 떠나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떠나는 일이 내가 준비를 시작한 시점에 비해 느긋하게 다가오게 되고, 무슨 은혜인지 모르나 감사할만한 여러 일들이 갑작스럽게 후다닥 일어나고 나니ㅡ

또 잠시의 감격과는 달리 시간이 지날 수록 부족함이 느껴진다. 마음으로는 전혀 미련없이 떠날 수 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물론 이러나 저러나 내 역할은 끝났다고 하겠지만, 미련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잠시가 지나고 나니 이 세상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의 한복판이라 자꾸만 여기가 고장나고, 저기가 고장나고 하는 것 같다. 

어찌됐든 끝이 가깝다는 것은 그나마 힘이 되어서,
끝까지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면 끝이 가깝기 때문이다. 이젠 포기하거나 실수하기에는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사랑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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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때 잠시.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에 갑작스럽게 우리가 400년 정도를 살게 된다면 우리는 어디까지의 과거를 기억할 수 있을까.
첫사랑, 첫키스, 처음 글을 읽었던 날,
처음의 경험들을 지금처럼 강렬하게 기억할까.
아니면 가장 강렬했던 추억들도 너무 오래되어 지워지고, 어디 한 200년 정도된 일들만 기억하게 될까.
그것도 아니면 지금 내가 기억하는 것들을 똑같이,
기억하고 있을까.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나는 어느 날인가 미래를 버렸다. 어느 날 나를 돌아보니 나는 모든 것을 미래로 유보하여 현재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것이 유보되어버린 현재의 고통을 더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미래를 버리고 현재를 선택했다.
하지만 현재를 살았던 행복했던 시간이 조금씩 지나고 잠깐의 실패를 겪고나서,
나는 다시 미래에 현재를 유보하는 과거의 방식을 조금씩 되찾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또다시 미래는 나를 배신하여, 유보된 현재는 고통 뿐이었기에 나는 이제는 과거를 선택하고 말았다.

미래가 나를 데려다 놓은 곳은 선택하고 싶은 현재는 없는 황량한 곳이었고,
나는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과거를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평생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추억을 끌어안고 징표들을 보존하고, 다시, 또다시, 되새김질하여 머리 속에 차곡차곡 쌓아놓으면
400년을 살아도 나는 그 아름다움을 기억할 수 있을까.


나는 아름다웠던 과거 속에서 정체되어 변화를 거부하며 살고 있다. 나의 미래를 그다지 원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내가 미래를 위해 생각하는 것들은 내가 떠난 후에 남을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내 과거의 사랑으로 현재의 당신들의 미래를 사랑함.

떠남.
나의 미래는 사라지고, 남겨지는 사람들의 미래만이 남는 것.
그래서 아마도 지금 나에게는 가장 적합한 미래가 아닐까 싶다.
나는 떠나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이 나에게 변화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속에서 그 시절 나의 사랑으로 당신들의 미래를 예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미래로 당신들에게 무언가를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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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참 어색하게 느껴지던 것들 중 하나가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계획이 현실화되는 방법 체계'라고 할 수 있겠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여름 휴가 계획을 세울 때가 되면 사람들은 서로 묻기 시작한다.
'여름 휴가 계획 있으세요?'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직장 동료들 사이에 일을 제외하면 화제거리가 별로 없다는 것이 첫번째,  
그리고 좀더 깊게 들어가면 여름 휴가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시켜서 공식적으로 현실화되도록 하려는 의도가 있다. 여기에는 더 나아가 대화의 진행과 함께 자신의 여름 휴가 계획을 다른 사람에게 은연 중에 드러내어 '먼저 계획된 것'으로 만들려는 의도도 포함된다. 이것에 성공하면 이 휴가 계획은 실제로 현실이 되거나, 최소한 불발됐을 때 많은 사람들의 미안함을 살 수 있게 된다.

간단하게 말하면 '사전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방법론을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기 몫을 챙기기 위해서 아주 중요한 스킬이라는 것은 부정하지 못하겠다. 또한 나처럼 사전작업을 잘 못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이 다른 이들의 사전작업을 통해 많은 득을 얻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이것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에도 어느정도 동의하는 바이다.

어쨌든 그래서 나도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맞는 여름 휴가를 어떻게 보내야 할 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름 휴가에 대해 처음 생각했을 때, 내 머리 속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피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혼자서라도 피정을 떠날 수 있는 상황이 된 지금,
이제 그녀는 곁에 없지만,
그녀와 나를 이어주었던 영원히 사그러지지 않는 하나의 소원이 내 마음에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과 진실이 눈을 맞추고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며

진리가 땅에서 솟아나고

의가 하늘로부터 내리리라"
_시편 85편 10, 11절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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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이런 평화를 단 한번도 누려보지 못하고 이렇게 되고 말았지만.

나무와 꽃을 사랑하는 그녀가 어느 여름방학에 필사적으로 평화를 누릴 곳을 찾다가 발견한 이 곳, 필그림 하우스.
지금 필사적으로 홀로 평화를 찾아 헤매는 내게 필그림 하우스는 유일한 선택지나 다름이 없었다.

어쨌든 7월초 예약했다가 회사 사정 상 불발이 되는 불상사까지 겪고, 또 다른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갑작스럽게 휴가를 가게되어 금요일 저녁에 토요일 체크인 예약을 하는 무리한 일정을 시도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2시간 반. 가평군에서도 상당히 안쪽으로 들어가야 나타나기 때문에 경춘로(맞나?)를 달리다가 슬슬 길을 잘못 든게 아닌가 불안해 할 때 쯤이 되면 표지판이 갑자기 나타난다. 예상보다 훨씬 멀었지만,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완벽한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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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인을 하고 들어가면 우선 느껴지는 '고요함.' 그리고 건물 곳곳에서 다음과 같은 문구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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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그림 하우스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순례자의 쉼터를 꿈꾸며 만든 이 곳은 카톨릭의 수도원 영성의 일부를 차용하여 곳곳에 사용하고 있다. 렉치오 디비나 도서관, 압바암마 카페, 은자 식당, 카리타스 채플, 메디타치오 채플 등등, 대부분의 장소가 수도자들이 사용하던 언어들을 사용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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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타치오 채플. Meditatio는 명상이라는 뜻. 이름대로 묵상기도를 하는 침묵기도실이다. 필그림 하우스에서 유일하게 24시간 사용가능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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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바암마 카페. 압바, 암마는 아람어로 아빠, 엄마를 뜻하나, 고대교회 수도자들은 서로를 압바, 암마라고 불렀다고 한다. 말하자면 형제님, 자매님 정도. 필그림 하우스에서 해가 나면 가장 시끄러운 곳이 된다. 각종 간식거리와 아메리카노를 비롯한 커피를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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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렉치오 디비나 도서관. Lectio Divina는 '신성한 독서'라는 뜻. 이동원 목사 저서와 각종 신앙서적들이 구비되어 있다.

이러한 현대적인 부대 시설들이 잘 구비되어 있는 것은 필그림 하우스의 특별한 장점이다. 건물도 둘러보면 둘러 볼수록 세심하게 잘 디자인되어 있다(물론 진짜 구석구석 찾다보면 남은 자재들이 쌓여 있는 창고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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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카페, 도서관, 예배실, 세미나실 등 각종 공동 공간이 모여있는 예루살렘 동의 중앙정원과 테라스. 아래 사진의 오른쪽 창 너머로 보이는 것이 은자식당이고, 정면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것이 압바암마 카페.

이런 모든 장점들 아래 가장 근본적으로 깔려있는 가장 중요한 점은 주변의 자연경관이 정말 탁월하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자연을 누릴 수 있도록 아주 잘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점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것이 본당의 역할을 하는 카리타스 채플과 건물 주변을 두르는 산책로이다. 예배 중에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기에 사진은 없지만, 카리타스 채플에서 진행되는 주일 예배는 꼭 한번 드려보기를 권한다.

필그림 하우스 전체를 두르는 산책로는 천로역정의 컨셉을 따라 구성되어 있다. 주변은 전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건물이 산을 따라 올라가는 형태로 지어져 있기 때문에 산책로는 거의 숲길이다. 나는 첫날 저녁 쯤에 도착하였는데 시간이 좀 늦어지자 어둠이 깔려 길을 가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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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 초입. 좁은 문. 곳곳에 묵상을 돕기 위해 천로역정의 키워드들이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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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에 쉴 수 있는 장소들이 마련되어 있다. 미궁(House Beautiful, 던전이 아님)은 정말 좋아서 이 곳에서 시간보내다 날이 어두워지고 말았다. 각종 다기와 싱크, 티백, 소파, 초 등등이 구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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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에 만나는 자연. 정말 숲속이라 곤충들이 사람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 듯, 가까이 와서 앉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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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을 지나고 나면 진짜 숲길이 나오는데, 어두워지면 정말 무섭다. 날 밝을 때 산책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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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하루였지만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에도 많은 진전이 있었던 것 같고, 그저 고요한 평화를 누리는 것만으로도 회복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있는 동안 톰 라이트의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와 마르바 던의 '안식'을 조금씩 읽었는데, 하나님의 임재에 있어서 장소보다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공통적으로 나왔다. 장소는 일종의 도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뿐이다.
하루의 시간을 특별히 구분하는 데에 필그림 하우스의 고요한 녹음은 정말 큰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고요한 순례의 영성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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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2011/04/13 23:06 from 분류없음
'쩍'하고 마음 속에 균열이 일어날 때에

'가슴이 무너진다.'

 라고 말하는 순간

정말로 가슴이 무너져내리고 만다.


이렇게 마음이 아플 때마다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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